“농산물 수출 때 콘텐츠(내용물)보다 중요한 것이 거래 플랫폼입니다. 농산물은 매년 생산량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데이터에 기반한 거래 플랫폼이 어떤 산업보다 중요합니다.”
최근 서울 방배동 본사에서 만난 신호식 트릿지 대표는 “120억 개가 넘는 무역 데이터가 축적된 플랫폼을 앞세워 바이어와 공급자가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신뢰를 쌓은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트릿지는 농산물 무역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다. 전 세계 농산물 작황, 가격 등 농산물 데이터를 유료로 제공한다. 2015년 설립 이후 소프트뱅크벤처스, 미국 액티번트캐피털 등에서 투자를 유치했고 지난해 DS자산운용에서 500억원을 투자받을 때 국내 농식품 스타트업 중 처음으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됐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신 대표는 한국투자공사(KIC)와 도이치뱅크 등에서 글로벌 트레이딩·투자 업무를 했다. 현재 월마트, 까르푸 등 글로벌 유통·식품업체가 주요 고객이다. 트릿지가 관리하는 공급자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각국에 포진돼 있다.
신 대표는 “농산물 거래 과정에선 구매자와 판매자를 다리처럼 연결해 각종 비효율과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했다. 사명인 트릿지(Tridge)는 거래(transaction)와 다리(bridge)를 합쳐 만든 말이다.
신 대표는 뉴질랜드산 키위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국내에 수입되는 키위는 대부분 뉴질랜드산이다. 그렇다 보니 현지 작황에 따라 키위 가격이 출렁인다. 트릿지는 그리스산 키위로 눈을 돌렸다. 그리스는 유럽의 대표적인 키위 생산국이지만 국내 수입 비중은 미미했다. 신 대표는 “농산물 공급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각 원산지를 모두 아우르는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이런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에 국내 시장에 그리스산 키위를 대거 들여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트릿지는 구매자와 판매자를 단순 중개하는 차원을 넘어 풀필먼트(물류) 공급망도 구축했다. 구매자가 플랫폼에 주문을 넣으면 트릿지가 적절한 공급자를 찾아준다. 세계 40여 개국에 상주하는 현지 직원이 농장 실사, 공급자 이력 검증, 운송, 세관 업무 등 고객의 모든 무역 업무를 대행한다. 신 대표는 “과거 업계 인맥과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거래 방식보다 안전하게 농산물을 거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카길, 루이드레퓌스 등 메이저 기업이 진출한 곡물 분야는 전체 농식품 시장의 14%에 불과하다”며 “트릿지가 주목하는 과일, 채소 시장이 나머지 86%”라고 말했다. 소품종 대량생산 위주의 곡물 시장에 비해 과일과 채소시장은 품종도 많고 가격 등락도 심해 거래 데이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트릿지는 국내와 미국 증시 상장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141억원으로 2021년(265억원)보다 네 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만큼 성장세가 빠르다. 영업손실이 2021년 169억원에서 지난해 599억원으로 불어난 건 부담이다. 신 대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략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